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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운동선수

이천수 과거 프로필 나이 학력 폭력

by 10분전 이슈 111 2020. 6. 1.

이천수 전 축구 선수는 1981 년 7 월 9 일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의 윙어 축구 선수였다.

2015 년 11 월 6 일 은퇴를 선언했다. 인천에서 태어나 부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평동 중학교를 졸업한 후 부평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고려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중퇴를 했다. 이천수 전 축구 선수는 2002 년 울산 현대에 합류했다.

당시 K 리그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직한 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로 진출한 첫 한국 선수였다. 그러나 그는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별로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CD 누만시아에 임대되었지만, 그곳에서도 활약이 뜸하자 2005 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점차 실력을 회복했다. 20-20 클럽에 합류하여 울산 현대 축구단에 우승을 하며 K 리그 MVP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2007 년 네덜란드의 페이 노르 (Faye Noord)로 이사했을 때 그는 다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수원 삼성 블루 윙스 (Suwon Samsung Bluewings)에 임대된 후 K 리그로 돌아왔다.

당시 그는 팀에서 선수와 코칭스태프에게 문제를 일으켰으며 강제 탈퇴되었고, 박항서 코치를 통해 전남 드래곤즈로 다시 임대되었다.

2009 년 시즌 오프사이드를 선언 한 조수 심판에게 주먹을 치켜들어 한국 프로 축구 연맹에 의해 6번의 경기 중단, 6 백만 원 제제금, 광양 홈경기 기수 플레이 참여의 징계를 받았다.

이러한 징계는 2002 년 월드컵에서 눈부신 축구 선수에게 가장 치명적인 징계였다.

그 이후로 그는 많은 논란과 논쟁을 겪었으며 심지어 코치와 주먹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알 나스르로 이직했지만 성공을 보여주긴 커녕 연속적으로 부상을 입었고 K 리그에서 과거의 문제로 인해 쉽게 복귀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전 선수 이천수가 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2000 년과 2002 년 월드컵에서 라오스와의 경기에서 위대한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페널티 킥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성공률은 좋지 않았다.

 

● 축구선수 은퇴 후

 

은퇴 후, 그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축구 관련 프로그램에서 일하거나, 축구 해설자로 활동한다.

이천수 전 축구선수는 같은 시기에 스타덤으로 올랐던 박지성과 비교되는 인식들이 상당히 많았다.

노력하는 박지성과 달리 노력하지 않는 이천수의 모습이 비교되면서 결과적으로도 상당한 대비 구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도 박지성 보다도 이천수가 축구 실력이 더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이천수 선수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박지성 선수의 승승장구가 이어져 가면서 많은 팬들이 이천수 선수를 보는 시선을 곱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천수도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다. 부평 고등학교에서 같은 나이에 최태욱을 이기는 것은 미친 듯이 연습했다고 한다.

어느 시점에서 이천수와 박지성의 비교는 의미가 없지만 축구 선수의 행동에 대한 다양한 성격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그의 능력으로 볼 수 있다.



이천수는 해외로 진출해서는 안된다는 견해가 있지만, 국내보다 해외에서 경험이 많았던 재능 있는 이천수 선수라고 확신한다.

한국에서만 뛰었다면 좋은 축구 선수로 남아 있었지만 후회하지 않은 후회는 분명히 다릅니다.
유상철의 수상 경력과 같은 내용으로 나열할 수 있지만 이천수에게는 논란과 논란을 나열 할 수 있다. 이천수 씨가 속상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역사는 2003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는 수원 서포터스를 손가락으로 욕을하고 3 백만 원의 벌금을 냈다. 당시 2002 년에 큰 스타가 된 이천수 선수는 3 백만 원은 껌값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그는 스페인의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적응할 수 없었고 누만시아로 이직했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했다.

 

2006 월드컵때 그가 심은진과 사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2007 년 K-League를 해외로 보내지 않으면

K 리그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천수선수는 축구선수로서 은퇴를 하였고 지금은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약을 하고 있다.

그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많이 개선되었고, 아직 발휘하지 못했던 그의 능력이 앞으로 더 발휘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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